- 윤 동 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둘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녂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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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된 식민지 조선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지식인의 고뇌와 아픔,
상실과 모색을 다루고 있은 작품입니다.
민족의식을 가진 작자는 자신이 찾아야 할 가치와 삶을 찾기 위해
'길'로 나섰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으로 표현된 황폐한, 삭막한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진지한 물음을 통해 참된 자아의 회복을 염원합니다.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 인데, 돌담으로 인해 돌담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없고,
돌담이 길과 평행 상태에 있어 그 세계에 도달할 수도 없습니다.
돌담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쇠문'은 굳게 닫혀 절망적 상황을
느끼게 하고, '길 위에 긴 그림자' 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시인은 자아 성찰을 통해 자아 회복의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서 시인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시인은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있는 자신,
즉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위함이고, 어둡고 슬픈 현실 상황 속에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독백합니다.
“참 자아에 대한 인식은 ‘하느님과 같이 되고 하느님 안에서 살며 하느님의 눈으로 보며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피조물을 연민을 가지고 사랑하도록’ 하느님의 내적 현존에 의해
내부로부터 변화됨을 의미한다."(토마스 머튼)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자신 안에 지닐 때 참 자아에 이르게 된다고 봅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 C.G. Ju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