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는 내가 들어가지 못한 숲이 있다

물푸레나무의 젖은 머릿결 속으로 은빛 잉어 한 마리 길을 간다

하늘과 새와 이름 모를 꽃들이 툭 툭 잉어의 지느러미에 깨어난다

비로소 세계가 몸을 튼다 틀어진 길의 끝에서

바람이 분다 숲이 숲으로 겹쳐진다

수면의 주름이 연못의 시간을 밀고 내 발끝까지 찰랑댄다

감당할 수 없는 주름의 시간이여 나에게도 삶은

이렇게 밀려왔었다, 밀려간다

온몸으로 우는 것은 누군가 내 속에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풍금처럼 가볍게 밟아도 일어서고 쓰러지는 것은

또렷하게 아픈 것이다 연못엔

내가 들어가지 못한 숲이 있다 그 곳엔 은빛 잉어 한 마리

푸르고 깊은 상처를 내며 길을 간다

비로소 세상이 몸을 튼다

언젠가 숲에 들지 못한 날들이 단단한 돌멩이가 되어

연못 속으로 던져진다

간절한 것들이 그리운 것들로 되기까지

나는 연못 위를 서성였다.










신부님,그리고 여전히 샘가에 모이신 분들 편안하셨는지요.
오랫동안 적조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문재 시인의 '퇴근 후엔 모자를 쓰자'라는 글을 읽었지요.
스물 아홉 젊은 시절 신문사에 취직을 하고는
'낮에는 기사를 쓰고 밤에는 시를 쓰자' 다짐했답니다.
그러나 밤의 시인은 급격히 위축되어 버렸고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취재를 했답니다.
그는 하루종일 기자였고 시의 시간은 증발해 버렸다는 겁니다.
어느 날,
남대문 시장을 몇바퀴 돈 끝에 벙거지모자를 하나 샀답니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모자를 뒤집어 쓰고
'이제 나는 월급쟁이가 아니다.'고 다짐했다네요.
모자를 쓰는 순간 시인이 되었고
모자를 쓰는 순간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답나다.
모자쓰기의 안간힘이 없었다면
그는 벌써 시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 봄에는 모자를 쓰자.
모자를 쓰고 '나'를 만나러 가자.
이모작을 하러가자."라고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가끔 내가 가고자 했던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금처럼 가볍게 밟아도 일어서는'
그런 간절한 그 무엇을 지금 접어두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자꾸 뒤를 돌아보는게 무엇인지...
마음 안에 연못 하나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연못 위를 서성이고만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네요.
저의 여름방학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