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희

찬 겨울 길거리

당신이 홀로 외로워할 때

잔가지 죄 꺾어지고

바람에 휘청이는 갈대의 허리

휘여져 신음할 때,

그 부러진 신음소리

그 갈대가 당신임을 몰랐습니다.

가시자갈 밭 신발 벗은

작은 발 당신의 발인 줄,

그 밤 추움에 떨며

우정이 그리워

내게 와 손 내밀었을 때

나는 당신을 멀리 피하여

평안한 잠을 취했습니다

나는 수치의 따가운 철모를 쓰고도 아무렇지 않는

얼굴 떳떳한 부끄러운 사람

당신이 혹독한 바람 속에서

손발 떨며 먼 하늘 보다가

불 켜진 창문 안을 기웃거릴 때

당신이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사랑을 위해 버림받은

그 왕자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이야기, 사랑의 왕자시여

순수와 긍휼과 우정이 낡은 것 되어

비웃음 받는 세상에서

거리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한갓 귀찮고

우스꽝스런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혹독한 세상에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하늘의 왕이시여, 미쎄레레

우리들을 당신의 품안으로 거두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