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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물 필자소개

 
2004년 8월 30일 월요일 조회수 : 6146

장돌뱅이에서 신부가 되어

경향잡지 1998년 11월호
 

장돌뱅이에서 신부가 되어

김홍언 요한 보스코 신부

처음엔 임이 부르시기에
멋 모르고 따라나섰죠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갔죠

예, 할 것은 아니오,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예, 하고

한사코 아집의 기둥만을 붙들고 살아온 사반세기 세월
넓고 깊은 바다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백사장 언저리를 맴돌다

무심히 뒹구는 하얀 조가비 신세

새하얀 빛깔로
눈처럼 쏟아져 내려

형체도 없는 황홀한 죽음으로

맛이 되고, 살과 피가 되어

환생의 나래 활짝 펴고

자유하리라

김홍언 신부의 시 ‘은경축’과 ‘소금’ 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제주도 한라산 중턱 글라라 봉쇄 수도원 문간방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외로움에 지쳐 갈대밭 들판길을 거닐며 갈대숲에 사운대는 바람결에서 무엇인가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갈대의 몸부림의 의미를 알게 되겠지요.” 광주대교구 김홍언 요한 보스코 신부(현 목포 연동성당 주임). 그가 지천명의 나이를 넘으며 펴낸 수상집 「살아있는 피리」의 후기이다. “칼로 후벼 파낸 그 나무가 영혼을 달래주는 피리가 아닌가?”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에 공감하여 붙인 책 제목처럼 그는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천명을 깨달았다.

간 기능 이상으로 치른 삼여 년의 외로운 투병생활, 부러진 갈대 같던 그는 가만히 자리에 누워 요양해야 한다는 의사의 명을 거역하고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죽느니 외로운 사람들 속에서 일하다가 빨리 죽어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으로, 흑산도본당에서 한 달 동안 산 중턱을 깎아 공소를 짓는 고된 일을 하며 육신을 혹사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달 뒤 간 기능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자신의 기가 꺾이고 하느님의 기를 받는 은혜로운 체험을 한 김 신부가 올해 회갑을 맞았다.

“그리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데 뭘….” 하고 멋쩍어 하는 김 신부는 성소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자신을 ‘장돌뱅이에서 신부가 된 사람’이라고 고백한 바가 있다.

전남 강진에서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김 신부는, 어머니가 나이 마흔둘에 얻은 늦둥이라 스스로를 덤으로 태어난 인생이라 여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개신교에 다니던 그는, 좌익에 연루되어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도시 중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가슴에 한이 맺혀 중학교를 끝내자마자 돈을 벌기로 마음먹고 이웃 친구와 합자하여 장사를 시작했다. 친구는 잡화를, 자신은 메리야스를 들고 장터를 떠도는 장돌림이 된 것이다.

“여름에는 트럭 밑에 방석을 깔고 잠을 자고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다른 장터로 향하곤 했지. 시장통 밥집에서 가게 문짝을 빌려 흰 천을 깔고는 물건을 진열했어. 파장이 되면 문짝을 빌린 대가로 술을 팔아줬지.” 지금은 지방간으로 술을 못하지만 그때는 맺힌 한을 잊고 싶어서 막걸리를 서너 되씩이나 마셔댔다.

장사가 잘되자 누나뻘 되는 사람들이 계를 하자고 부추겨 열 개 이상 계를 들었는데 친구가 곗돈을 챙겨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안되겠다 싶어 외상값 대신 물건을 몽땅 도매상에 넘기고 광주로 가, 고학이라도 해볼 양으로 대학 근처의 제재소에 취직을 했는데 오다가다 동창을 마주칠 때면 그토록 비참할 수가 없었다.

마음 붙일 곳이 없던 그에게 친구 하나가 박태선 장로가 세운 전도관을 소개했다. ‘망할 놈의 세상, 말세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끔씩 동산에 올라가 마을에다 대고 말세가 되었으니 회개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신앙촌에 입촌하려고 벼르던 그를 매형이 잡아끌다시피 하여 약국에 취직을 시켰다.

약국생활 3년 만에 그곳을 나와 약사 면허증을 빌려 관리 약국을 경영하며 통신고등학교에 적을 둔 그는, 마침 북동성당에서 개신교 신자와 토론하는 신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주교를 이겨보려고 온갖 천주교 서적을 다 읽고 교리반에 나가기도 하던 어느 날 고민하던 그는 성서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우신 참 교회가 가톨릭이라는 것을 깨달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세례를 받았다.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몸도 세례를 받고 나자 감쪽같이 나았다. 그 해, 같이 장사를 하다가 돈을 가지고 도망쳤던 친구의 부음을 받았다. 잘살아 보자고 의형제까지 맺었던 친구가 요절하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그는 밤샘기도를 하며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스물세 살 되던 해였다. 시골 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던 고향 어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여 고등학교 재학 증명서를 얻어내 야간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2년 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대건신학대학이 정식으로 문교부 인정을 받는 바람에 다시 입학시험을 치기도 했다. 몸이 약해 세 번씩이나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그는, 연탄공장 사장이 딸을 주겠다고 하고 집에서는 선을 보라고 성화여서 방학 때면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부제품을 앞두고, 세상 물이 너무 들어 신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그에게 영성지도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원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결점을 그 안에 지름으로 그어보시오. 결점이 아무리 많아도 공백이 있을 겁니다. 당신은 세상 체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한과 고통을 함께 나눌 훌륭한 신부가 될 겁니다.”1969년 12월 16일, 드디어 대건신학대학 제1회 졸업생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살아보니 세상 경험이 너무 많아도 좋지 않더라는 김 신부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무안본당에서 사목할 때 양돈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엔 잘 나갔지. 돈을 빌려 땅도 4만 평이나 사고. 3년을 버텼나, 사료파동이 나서 쫄딱 망해부렀지. 탈탈 털어불고 굶는다고 소문이 났어. 엄청난 돈이 없어지고 나니 홀가분하더라고. 신부니까 그렇지 자식이나 가정이 있으면 미치겠더만.” 그래도 사료 배합법을 비롯해 배운 것도 많단다.

“돼지막에 석양빛이 들어오면 돼지가 잘 안 커. 남동쪽으로 살짝 틀어야 돼. 석양빛은 죽음의 빛인가 봐. 식물이나 사람도 그렇겠지. 돼지 불알도 내 손으로 깠는데, ‘고자가 돼지 고자 만든다.’고 사람들이 와 몰려와서 놀려먹고. 하하하.” 김 신부는 보좌신부 시절 야단이 난 적이 있다. “그땐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라고. 그래서 술 한 잔 먹고 들어가 문을 열어주는 본당신부에게 냅다 박치기를 했지. 피정지도 갔다오니 게시판에 발령 쪽지가 붙었어. ‘내가 꼬리표 하나만 붙이면 이동되는 물건이냐.’고 따졌지. 훗날, 보좌 때는 한쪽만 보여 그랬는갑다고 고백했더니, ‘이누무 자식, 늙어부렀는갑네.’ 하시데. 보좌가 들어오면 ‘야, 너도 나 박아불래.’ 하고 묻지. 하하. 그러다가 사제생활 30년이 되어부렀어.”학생 시절 본당에서 독서회를 조직하기도 한 김 신부는 사제다운 감성으로 광주 무등문학회 동인으로 시도 쓰고 신학교 때부터 배운 동양화로 은경축 때는 전시회도 열었다.

“밥 먹고 산다고 했으면 진즉 대가가 됐을 거야. 안식년 때는 서울 올라가 원로 시인에게 포스트 모더니즘을 배우기도 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수채화와 수묵화를 배우기도 했지. 그림은 딱 봐서 3초 안에 충격을 주어야 하는데 어렵더만.”갈대의 몸부림의 의미를 알아버린 듯한 이순의 나이, 늙어서 그림이라도 그리고 앉았으면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올 거 아니냐며, 신부는 고독해야지 외로우면 안된다는 노사제의 말씀에 가슴 한구석이 ‘짠해진다.’ 가을비 탓인가?

취재/배봉한(경향잡지 기자)

경향잡지 1998년 11월호


 
   
신부님, 염주동성당에 계실 때 가끔 염주동으로 아이들 데리고 미사보러 갔었어요. 아이들 안수기도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읍니다. 딸은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지요. 자신을 잃어버리고 하느님 은총의 바다에 포옥 안기시기를 빌고 또 빌어 드립니다. 2011-04-05 최형금
신부님께 혼나고 싶은 오늘입니다. 아이일때는 엄마께도 아빠께도 저를 혼내실분들이 참많아 잘못을 하고도 다리를 뻗고 잘잤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그럴기회가 흔치 않습니다.어쩔때는 아이처럼 혼나고 속시원이 한바탕 큰소리로 울며 마음에 짊을 지우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 많은 사람과 시련을 주심을 그 뜻을 제가 잘 헤아려야 겠는데......아직 너무 부족 합니다. 2006-11-27 박정임(안젤라)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성당에서 신부님의 강론을듣는데 어찌나눈물이나오던지 어린아이 처럼 웃으시는 그 웃음 뒤에 숨은 그 삶을 어쩌면 제가느껴을련지..... 2006-09-27 박정임(안젤라)
찬미 예수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것 같네요! 강론 때도 말씀 하셨드시 내 나이들면 한가지 약이라도 다먹는데 나는 먹지 않아 라고 말씀 하셨잖아요. 정말 영육간에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노년에 외롭지 않게 채팅 도 하시고 고독해야지 외로우면 안된다는 말씀 새겨들어서 영성의 샘물이 외롭지 않게 좋은 마음과 선한 양떼들이 많이 마니 들어와 행복만이 . 2006-09-05 김원봉
신부님의 지나간 시간들이 한 장의 사진처럼 펼쳐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총을 가득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2006-08-30 권영란베로니카
신부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영성의 샘물로 갈증을 녹여주소서... 2005-03-27 백조
그렇지만 지금 모습이 훨씬 더 좋아보입니다... 마디 굵은 대나무 되시길... ^_^ 2004-12-06 부성아
모 홈페이지에서 신부님 젊은 시절 모습을 봤는데 (사제서품식때 찍었던 사진일것임) 잘생기셨던데요,그래서 연탄 공장 사장이 딸을 주려고 했나? 2004-12-06 부성아
우여곡절이 깊은만큼 은총의 깊이도 더해갑니다. 대나무가 마디가 있어서 더 길게 자라듯 신부님도 역시 그러한 분입니다. 성령 함께 하길. 2004-12-06 부성아
신부님 늘 건강하세요. 꼬옥~~!! 2004-08-31 김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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